“물 흐르듯 살다 돌아보니 낯선 내가 되었네”
- 괴산의 프리랜서 홍남화 (2017년 괴산 문화학교숲 청년지역활동가 / 현 청년공간 오롯, 나마디자인)

홍남화 씨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지역에 정착한 청년을 만나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 역시 지역에 사는 청년인데도 늘 의아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왜 이 지역이었을까? 뭘 해 먹고 살까? 어떤 좌절감을 겪었을까? 언제까지 머물 생각일까? 부족한 농촌 인프라와 연결된, ‘기대’가 없는 질문들이다.
홍남화 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영상 회사에서 퇴사한 뒤 부모님이 계시는 괴산에 내려와 산다고 했다. 집에서 고양이와 놀고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자연 풍경도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디자인 일이 많이 밀려들어 온다고 했다. 문화학교 숲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여전히 의아했다. 심심하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을까? 이제는 떠나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이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음을, 남화 씨와 한 인터뷰가 끝나고 알았다. 지역에 사는 청년에게 지역은 단지 배경일 뿐일 수도 있음을, 구체적인 삶은 누구나 사는 일상에서 벌어짐을 남화 씨를 통해 알았다. 단지 각자의 일을 할 뿐이다. 거기에는 지역이라는 점이 주는 좌절도 실패도 없다.
괴산에서 만난 새로운 나
- 괴산에 내려온 뒤 프리랜서로 살면서 다양한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문화학교 숲’ 교육 프로그램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문화학교 숲은 동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단체예요. 마을 방송국, 연극 모임, 전래놀이 등 문화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키워나가고자 하죠. 저는 원래 다시 취직하러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었어요. 벌이를 계속해야 하니까, 간간이 서울에서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일주일을 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문화학교 숲’에서 먼저 방과후 미술 선생님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이걸 받으면 1년은 괴산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고민하다 그냥 해보자며 제안을 받아들였죠.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었어요. 원래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애들 만나는 게 무서웠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니 애들이 저를 좋아해 주는 거예요. 다른 타인과 관계 맺는 걸 부담스러워했는데 이 새로운 인간관계가 저한테 자신감을 주더라고요. 원래 표현도 잘 못 했는데, 아이들한테 수업하면서 북돋아 주는 말을 자주 하다 보니 표현도 늘고요.”
나를 넘어, 지역 청년 정책에 대한 고민
- 지역에 아무리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 또래를 만나기는 쉽지 않잖아요. 괴산에서 지낸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런 점이 아쉽지는 않았어요?
“초반에는 또래가 없어서 헛헛한 게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또래만 만나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또래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새롭고 즐거운 관계인 데다,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지만 고민 나눌 또래가 없는 데 갈증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은 내 개인의 일과 고민만 있었다면, 이제는 청년 정책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아요. 최근 청년 모임이 생겼거든요. 괴산에 사는 20~30대 청년들이 화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맛있는 걸 먹고 노는 거예요. 농사짓는 분, 나비 키우는 분, 문화학교 숲 활동가, 이제 막 성인이 된 분 등 다양해요. 청년모임이 이어지면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청년이나 개인 작업자가 교류하고 나누는 장으로서의 공간이요. 서울에 갔다 오면 매번 새로운 자극을 받는데, 바쁠 때 괴산에만 있다 보면 서울에 가지 않고도 괴산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없을까? 싶어지더라고요. ‘새로운 공간, 전시가 괴산에 너무 없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 지점도 생기고요. 마냥 서울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괴산에도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역에 사는 청년으로서 부족한 문화 공간, 청년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데 삼선재단 청년지역활동가인턴십이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문화학교 숲에서 삼선재단의 청년지역활동가인턴십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당시에 엄청난 유혹이었어요. ‘취직보다 나은데?’ 싶었죠. (웃음) 그전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다 안정감을 얻었어요. 그때 산 작업용 컴퓨터를 아직도 잘 쓰고 있어요. 활동 보고를 에세이로 쓰는 것도 좋았어요. 생각 정리도 되고,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고요. 활동 보고 발표는 부담이 되긴 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다른 지역 청년 발표를 듣는 것도 재밌고요. 무엇보다 지역에 사는 청년을 정말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느껴졌어요. 삶을 지지 받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냥 편하게 살려고 내려온 건데 ‘잘하고 있다’고 격려 받으니 왠지 더 지역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웃음)”

문화학교숲 활동가들과 함께 작업 중인 홍남화 씨
물 흐르듯 살아도 실천에 필요한 계획이 있어야지
-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청년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이 계획으로 이어지는데요, 우선 청년들이 모일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현재 부모님과 사는 집에서 나와 독립한다면 큰 집을 구해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어요. 괴산군에 청년 주거정책이 따로 없더라도 청년들이 편히 머물만한 집이 있었으면 해서요. 개인적으로는 인쇄 공방을 표방한 개인 작업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한쪽 벽면에는 괴산 사람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얇은 책 여러 권을 만들어 전시하고 싶어요. 언젠가 벌이에 급급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생기면 개인 디자인 작업을 하려고요. ‘괴산 살이 일러스트집’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괴산에 사는 모습, 산책길, 창문 풍경, 운전하다 만난 고라니처럼 숨어 있는 예쁜 것들을 그린 책이요.”
남화 씨의 즉흥적인 모습에 자주 웃었다.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조금 부러운 마음까지 들고 말았다. “텃밭도 안 나가보면서 집에서 농사 게임 한다”라고 핀잔주는 남화 씨 어머니 말처럼 귀촌 한 청년의 전형적인 로망의 패턴과 달라서 재밌는 인터뷰였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나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혼자 일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개인으로 성장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다른 성장을 할 때”라고 말해내는 남화 씨가 대단해 보이는 건 나뿐일까. 인터뷰를 끝낸 남화 씨가 문화학교 숲에서 빌린 한쪽 책상에 앉아 애니메이션 임꺽정 작업을 계속했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남화 씨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홍남화 씨가 작업하는 애니메이션 임꺽정 일러스트 일부.
글, 사진 ︳ 김예림
“물 흐르듯 살다 돌아보니 낯선 내가 되었네”
- 괴산의 프리랜서 홍남화 (2017년 괴산 문화학교숲 청년지역활동가 / 현 청년공간 오롯, 나마디자인)
홍남화 씨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지역에 정착한 청년을 만나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 역시 지역에 사는 청년인데도 늘 의아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왜 이 지역이었을까? 뭘 해 먹고 살까? 어떤 좌절감을 겪었을까? 언제까지 머물 생각일까? 부족한 농촌 인프라와 연결된, ‘기대’가 없는 질문들이다.
홍남화 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영상 회사에서 퇴사한 뒤 부모님이 계시는 괴산에 내려와 산다고 했다. 집에서 고양이와 놀고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자연 풍경도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디자인 일이 많이 밀려들어 온다고 했다. 문화학교 숲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여전히 의아했다. 심심하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을까? 이제는 떠나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이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음을, 남화 씨와 한 인터뷰가 끝나고 알았다. 지역에 사는 청년에게 지역은 단지 배경일 뿐일 수도 있음을, 구체적인 삶은 누구나 사는 일상에서 벌어짐을 남화 씨를 통해 알았다. 단지 각자의 일을 할 뿐이다. 거기에는 지역이라는 점이 주는 좌절도 실패도 없다.
괴산에서 만난 새로운 나
- 괴산에 내려온 뒤 프리랜서로 살면서 다양한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문화학교 숲’ 교육 프로그램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문화학교 숲은 동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단체예요. 마을 방송국, 연극 모임, 전래놀이 등 문화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키워나가고자 하죠. 저는 원래 다시 취직하러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었어요. 벌이를 계속해야 하니까, 간간이 서울에서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일주일을 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문화학교 숲’에서 먼저 방과후 미술 선생님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이걸 받으면 1년은 괴산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고민하다 그냥 해보자며 제안을 받아들였죠.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었어요. 원래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애들 만나는 게 무서웠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니 애들이 저를 좋아해 주는 거예요. 다른 타인과 관계 맺는 걸 부담스러워했는데 이 새로운 인간관계가 저한테 자신감을 주더라고요. 원래 표현도 잘 못 했는데, 아이들한테 수업하면서 북돋아 주는 말을 자주 하다 보니 표현도 늘고요.”
나를 넘어, 지역 청년 정책에 대한 고민
- 지역에 아무리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 또래를 만나기는 쉽지 않잖아요. 괴산에서 지낸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런 점이 아쉽지는 않았어요?
“초반에는 또래가 없어서 헛헛한 게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또래만 만나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또래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새롭고 즐거운 관계인 데다,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지만 고민 나눌 또래가 없는 데 갈증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은 내 개인의 일과 고민만 있었다면, 이제는 청년 정책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아요. 최근 청년 모임이 생겼거든요. 괴산에 사는 20~30대 청년들이 화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맛있는 걸 먹고 노는 거예요. 농사짓는 분, 나비 키우는 분, 문화학교 숲 활동가, 이제 막 성인이 된 분 등 다양해요. 청년모임이 이어지면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청년이나 개인 작업자가 교류하고 나누는 장으로서의 공간이요. 서울에 갔다 오면 매번 새로운 자극을 받는데, 바쁠 때 괴산에만 있다 보면 서울에 가지 않고도 괴산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없을까? 싶어지더라고요. ‘새로운 공간, 전시가 괴산에 너무 없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 지점도 생기고요. 마냥 서울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괴산에도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역에 사는 청년으로서 부족한 문화 공간, 청년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데 삼선재단 청년지역활동가인턴십이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문화학교 숲에서 삼선재단의 청년지역활동가인턴십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당시에 엄청난 유혹이었어요. ‘취직보다 나은데?’ 싶었죠. (웃음) 그전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다 안정감을 얻었어요. 그때 산 작업용 컴퓨터를 아직도 잘 쓰고 있어요. 활동 보고를 에세이로 쓰는 것도 좋았어요. 생각 정리도 되고,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고요. 활동 보고 발표는 부담이 되긴 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다른 지역 청년 발표를 듣는 것도 재밌고요. 무엇보다 지역에 사는 청년을 정말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느껴졌어요. 삶을 지지 받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냥 편하게 살려고 내려온 건데 ‘잘하고 있다’고 격려 받으니 왠지 더 지역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웃음)”
문화학교숲 활동가들과 함께 작업 중인 홍남화 씨
물 흐르듯 살아도 실천에 필요한 계획이 있어야지
-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청년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이 계획으로 이어지는데요, 우선 청년들이 모일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현재 부모님과 사는 집에서 나와 독립한다면 큰 집을 구해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어요. 괴산군에 청년 주거정책이 따로 없더라도 청년들이 편히 머물만한 집이 있었으면 해서요. 개인적으로는 인쇄 공방을 표방한 개인 작업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한쪽 벽면에는 괴산 사람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얇은 책 여러 권을 만들어 전시하고 싶어요. 언젠가 벌이에 급급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생기면 개인 디자인 작업을 하려고요. ‘괴산 살이 일러스트집’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괴산에 사는 모습, 산책길, 창문 풍경, 운전하다 만난 고라니처럼 숨어 있는 예쁜 것들을 그린 책이요.”
남화 씨의 즉흥적인 모습에 자주 웃었다.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조금 부러운 마음까지 들고 말았다. “텃밭도 안 나가보면서 집에서 농사 게임 한다”라고 핀잔주는 남화 씨 어머니 말처럼 귀촌 한 청년의 전형적인 로망의 패턴과 달라서 재밌는 인터뷰였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나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혼자 일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개인으로 성장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다른 성장을 할 때”라고 말해내는 남화 씨가 대단해 보이는 건 나뿐일까. 인터뷰를 끝낸 남화 씨가 문화학교 숲에서 빌린 한쪽 책상에 앉아 애니메이션 임꺽정 작업을 계속했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남화 씨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홍남화 씨가 작업하는 애니메이션 임꺽정 일러스트 일부.
글, 사진 ︳ 김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