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지역활동가 지원 10년 인터뷰] 제천 "문은지"

“행동하는 한 삶은 지속된다”
 

- 문은지 (2014년 제천 농촌공동체연구소 청년지역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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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넝쿨은 문은지 씨가 처음 덕산에 왔을 때부터 빵카페 앞을 지켰다.

 

문은지 씨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예전에 읽은 이야기가 하나 생각났다. 1945년 3월 즈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때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키우던 가축을 모두 도살한다. 더는 씨앗도 뿌리지 않는다. 모두 체념한 채 종전만을 기다릴 때, 농부인 어머니는 암퇘지를 이웃 마을 수퇘지에게 데려간다. 그 모습을 본 이웃들은 모든 게 끝나가는 상황을 보지 못한다며 어머니를 비웃지만, 전쟁이 끝난 5월 암퇘지는 열두 마리 새끼를 낳는다. 

 

어머니를 비웃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새끼 돼지, 망아지가 한 마리도 없다. 더 이상 교환 가치가 없어진 돈 대신 새끼 돼지가 차례차례 전쟁에서 돌아온 다섯 아들을 위한 신발, 바지, 셔츠, 재킷이 된다. 어머니는 비웃는 이웃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삶은 지속된다.”

 

언제 어디서든, 삶은 지속된다. 2012년 문은지 씨는 연고 없는 덕산으로 덜컥 이주를 결심한다. 인터뷰 끝에 어머니와 암퇘지 이야기가 생각난 건, 온갖 시행착오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 어떤 체념이나 이상화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문은지 씨의 이야기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하고, 항상 자연과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농촌에서 ‘나’로 사는 법

 

- 사실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처음부터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사실은 장춘봉 님의 아내라는 것뿐인데요, 어떻게 연고 없는 덕산에 오셨나요?
“원래 시골에 로망이 있었어요. 시민단체 일을 하다 정토회 100일 출가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는데, 어디로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당시 남자친구가 자기 고향도 시골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좋다, 한 달에 50만 원이면 충분히 살 것 같으니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살아보자 하면서 덕산에 왔죠. 처음에는 생각과 많이 달랐어요. 방금도 ‘장춘봉 아내’로 알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사실 귀촌은 독립의 수단 같은 거였는데, 남편이 동네 토박이니까 여기서는 ‘나’라는 정체성 대신 ‘장춘봉 아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기대는 정착이 쉽기도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 삼선재단 청년지역활동가인턴십 지원은 정착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요.
“당시 농촌공동체연구소의 한석주 선생님이 ‘청년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인턴십을 소개해주셨어요. 공돈이 생긴 느낌도 들었고, 격려해주는 것 같기도 했죠. 나는 개인으로 살려고 온 건데, 사회적으로 지원해주는구나 싶어 살아갈 힘을 받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조차 왜 거기 가느냐고 하는데 ‘하고 싶은 거 더 해봐. 먹고 사는 거 지원해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지역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가 봐야겠다 혹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봐야겠다 싶어지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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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지 씨에게 청년지역활동가인턴십은 사회가 나에게 보내는 격려였고, 그로써 지역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농촌-도시, 이상-현실 경계 넘나들기

 

- 얼핏 들어도 활발하게 활동하신 것 같은데요.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삼선재단을 소개했던 농촌공동체연구소에서 밭을 공짜로 빌려줘서 작게 농사를 지었어요. 각자 생산한 것을 모아 판매하는 협동조합 ‘파릇’을 만들기도 했고요.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나 각종 동아리 활동을 하러 다니기도 했죠. 주로 텃밭을 가꿨는데요, 농사만으로는 내 삶을 꾸릴 수 없으니까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지역아동센터 꿈터’에서 아동복지 교사로요. 파트타임으로 4시간만 했으니까 책에 나오는 그대로였어요. 왜 일정한 시간만큼 일하고 농사짓고 공부하라는 얘기 있잖아요.”

 

- 농촌은 특징이 분명하잖아요. 자연과 가깝지만, 도시의 인프라를 누리기에는 턱없이 불편한. 저는 이게 유명해지고 싶거나 발전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과 연결돼요. 내가 농촌에 살아서 놓치는 기회가 아쉽고요.
“저도 서울로 심리학 대학원에 다녔어요. 서울에 갔다 오면 이상하게 다음날까지 화가 가라앉지 않는 거예요. 나도 꽤 내 마음대로 살았는데, 친구들은 저와 스케일이 다른 거예요. 내가 가고 싶은 비싼 여행지가 얘들에게는 현실인 거죠. 서울을 근거지로 하는 사람들은 공부가 빨리 느는 것도 같고, 내가 한 일은 소꿉장난 같다는 박탈감이 들고요.” 

 

호미질의 중요성

 

-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이 있을 것 같아요. 농촌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거요.
“기본적으로 땅과 멀어지면 건강을 잃는다고 생각해요. 필수적인 교육이 많이 있지만, 의식주 전 과정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어요. 물질문명에 기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것들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끝나는지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농촌뿐이라는 거죠. 물론 저도 오래 사신 분이 떠날 때는 많이 흔들려요. 그러면서 만약 내가 떠난다면 어떤 자기평가를 남길까 생각해보는데요. 햇수는 오래됐는데 지역사회에 무언가 했다는 느낌은 없거든요. 하지만 예전보다 내 삶에 충실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농사지으면서 개미 같은 삶이 좋은 삶이구나 깨달았어요. 작은 발걸음, 호미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가 만든 일상이 얼마나 우아해야 하는지요. 작은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오니까요.”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 조건을 따져본다. 나의 확신, 나의 실천, 단 한 명의 격려.  우아한 일상에 필요한 반복을 떠올려본다. 매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생태적 삶의 필요성을 나열해본다. 내가 먹고 입고 자는 것들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끝나는지 아는 것. 농촌이 아니었다면, 이유 없이 강렬한 확신이 아니었다면, 낯선 토닥임이 아니었다면, 아니 문은지 씨가 아니었다면 질문하지 않았을 건강한 삶의 조건들이다. 문은지 씨가 내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나요?” 나는 이렇게 답하려 한다. “당신을 인터뷰하고 있어요.”

 

 

글, 사진 ︳김예림

 

*인터뷰는 청년&지역 커뮤니티 지원 10년을 맞아 2020년에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