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지역활동가 지원 10년 인터뷰] 금산 이세연

“우리의 일이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 이세연 (2017년 금산 들락날락협동조합 청년지역활동가) 

 



마고(이세연)는 2015년에 금산에 왔다. 금산 간디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금산을 떠나 해외 봉사를 가기도 하고, 대전에서 ‘프로젝트 낭만’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가서 살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대금(들락날락 이사장이자 마고의 멘토인 박성연 씨의 별칭)이 지원사업을 같이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연락을 주었다. 마고는 대금과 친구 한 명과 함께 ‘들락날락’을 만들었다.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렇게 금산에 온 지 5년째, 마고는 올해 4월에 들락날락에서의 일을 정리했다. 마고의 가장 편안한 장소인 ‘숲속마을’ 집에서 고양이 호야, 탄타와 함께 마고를 만났다.


우리의 일이 활동 아닌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 금산에 와서 바로 ‘들락날락’ 활동을 시작했나요?

“네, 금산에 와서 들락날락을 시작했어요. ‘지역에 내려오는 청년들을 돕자’는 키워드를 세우고 활동했어요. 1년 동안 지역에서 청년들이 사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고민했죠. 네트워크 파티를 하거나 설문 같은 걸 해서 배움, 주거, 네트워크라는 주제를 잡게 되었어요.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많아요. 그런데 지역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청년들이 살 수 있는 곳도 적고요.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도 만들고, 셰어하우스 정책도 세웠어요. 지역에는 친구가 많이 없어서 네트워크 파티를 열었어요.”

 

- 들락날락에서 활동하면서 청년들이 들락날락 많이 오갔을 것 같아요.

“많을 때는 20명 가까이 되는 청년들과 함께 활동했어요. 하지만 청년들이 도시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죠.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밥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움, 주거, 네트워크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아서 이제 우리의 ‘직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재화로 연결되었으면 좋겠거든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금산에서 무엇을 하고 산다고 매번 설명해야 하고,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기 힘들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협동조합 들락날락’을 시작했어요.”

 

- 맞아요.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일을 ‘직업으로서 정당화’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봤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친구들과 제 일이 활동이 아닌 직업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더 생각하고 있어요. 일이 취소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 건지 고민이 될 때도 있어요. 정책이나 지원사업들도 인건비 지원은 적어서, 일로서 인정받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함께 일하고 있고, 일했던 친구들의 이력에 들락날락이 큰 힘이 되는 한 줄이었으면 좋겠어요.”

 

- 삼선재단 청년 인턴십 지원은 언제, 어떻게 받으셨나요? 앞서 말씀해 주신 ‘밥벌이’ 이야기하고도 조금 연결해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2017년, 2018년 두 해 동안 지원받았어요. 50만 원은 사실 엄청 큰돈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혼자 금산에서 산다면 50만 원으로도 충분해요. 그 돈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 일을 하며 사는 데 보탤 수 있었어요. 또 좋았던 건, 삼선재단 청년 인턴십 지원금을 받으면서 내가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내 ‘인건비’를 인정해주는 것 같았어요. 우리들의 활동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죠. 의지가 많이 되었어요.”

 

금산 ‘숲속마을’ 마고의 집에서 마고를 만났다.


나를 지원하는 일이 곧 내가 하는 일


- 들락날락에서의 일들은 어땠나요?

“대전에서 활동할 때는 제가 소진되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어요. 스무 살 초반의 치기 어린 마음도 있긴 했죠. 청년 문제를 두고, 제가 아닌 가상의 청년 그룹을 돕는 일을 했어요. 내재화가 전혀 안 됐죠. 그래서 그만둔 게 커요. 들락날락은 ‘지역에 내려오고 싶은 청년들을 지원한다’는 게 키워드잖아요. 저를 지원하는 일이 곧 들락날락이 하는 일이더라고요. 저랑 멀리 떨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오래 지속할 힘이 있었어요. 제 사심을 많이 담아 일했죠.”

 

- 금산에 들락날락이 생긴 덕분에, 금산 간디학교 졸업생들이 “금산에서 살아볼까”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마고의 활동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 금산에서 산다는 건 전혀 생각도 못 했어요. 지금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자기의 선택지 중에 최하위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활동 덕분이라는 의미 부여 같은 건 안 해요. 이젠 금산이 친구들의 안전망이 된 거죠. 들락날락에 인턴십도 와요. 대안교육은 졸업 이후의 삶을 잘 돌보지 못해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들락날락 같은 곳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 4월부터 일을 그만두었다고 들었어요.

“몸이 좋지 않은 게 컸어요. 월장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3일을 앓아눕고 그랬어요. 일하는 것 외에 에너지를 쓸 수 없는 삶이었어요. 지금은 병원에 다니고, 운동하면서 체력을 기르고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쉬는 기간이 없었어요. 쉬니까 좋네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야겠다 이런 건 없어요. 저는 일할 때도 계획 같은 걸 안 세우고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을 했거든요. 일을 그만두면서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없어지는 건 좀 아쉬워요. 일하며 만나는 시간이 좋았거든요. 참 좋은 직장이었죠.”

 

마고는 도시와 지역에서 사는 게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어디서 사는 게 옳고 좋다는 것보다는 외형적인, 사람이 적고 숲이 많은 부분이 중요했다”라고 답했다. 금산에 살기 전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외딴 숲속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금산에서의 삶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게 했다. 마고가 사는 숲속마을에는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여럿 산다. 아플 때나, 놀 때나 친구들이 함께다. 집에 함께 사는 호야와 탄타도 마고에게 큰 힘이다.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이웃집 한의원에 꾸준히 다녀보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예정이다.

 

집 2층에는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꾸몄다. 마고는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게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마고의 고양이 호야. 마고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다. 탄타는 낯을 가려 얼굴만 슬쩍 보여주었다.


글 : 김세빈

사진 : 이준표

 

*인터뷰는 청년&지역 커뮤니티 지원 10년을 맞아 2020년에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