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람이 될, 다음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 백아름 (2019년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지역활동가 / 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한 달에 두어 번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씨에게 문자가 온다. 때마다 시시콜콜 마을과 조합 일을 전하는 소식지부터 직접 농사지은 농작물, 지역 상품, 야심 차게 준비한 명절 선물세트 소개까지 참으로 부지런하게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발신한다. 화려한 수사로 꾸미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진심을 전하는 메시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고작 두어 번 만났을 뿐인 청년이그린협동조합과 백아름 씨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고 반갑기만 하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씨를 만났다.
-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하 ‘청그협’)은 ‘지역민과 청년이 협력하고 상생하여 즐겁고 행복한 농촌,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자’라는 큰 목표가 있어요. 청년들이 함께 농사도 짓고요, 지역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도 해요. 지역 어린이합창단 운영, 농업환경보전 활동 등 마을 일도 열심히 합니다. 요즈음에는 여기 폐교에 공방, 가공장, 카페, 공유사무실을 만드는 일이 한참이에요."
- 청그협에서 백아름 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청그협이 처음에 목표하던 방향, 추구하는 가치대로 가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을 조율하고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아요. 계속해서 구성원들과 회의도 하고 사부님(장동범 멘토)께 여쭤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둥지인 경북 상주시 이안면 아천리 폐교. 마을공방, 가공장, 카페, 공유사무실, 어린이놀이터, 게스트하우스 등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용기
- 청그협이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네요. 선뜻 대표를 맡을 때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초기에는 ‘나한테 맞는 일이 뭘까’ 많이 고민하고 찾았어요. 그걸 하지 못했을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지요. 더군다나 대표를 맡다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맡은 일,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원하던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오히려 일보다는 공동체 생활이 낯설고 불편했어요.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차려주는 밥 먹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도시 생활은 모든 게 편리하고요. 여기에서는 추우면 땔감 나무해야 하고, 뭐든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사람들이랑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도 불편하고요. 마을 어르신들이 다들 예뻐해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뭔가 부담스럽다고 느꼈었어요. 그냥 밥 한 끼 해 먹자 했는데 어느새 동네잔치가 되어 있고, 젊은 사람이 없으니 저희가 일을 다 해야 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사실 1년 차에 집에 돌아가려고 했었어요."
- 그 고비를 어떻게 넘으셨나요?
“한 번 마음이 접히니까 집에 가야 하는 이유가 백 가지 넘게 생기더라고요. 사부님께 말씀드렸더니 ‘조금 더 생각을 해봐라’, 또 ‘조금 더 생각을 해봐라’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1년이 지났어요. 그리고서도 제가 떠나겠다고 하니까 ‘정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야지’ 하셨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우스운 게 그렇게 결정하고 여기에 내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서운한 거예요. 그때 사부님이 저를 불러서 한 번 더 말씀하셨어요. ‘자기의 인생은 스스로 만드는 거다, 전처럼 하던 대로 똑같은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다르게 살아봐야지 않겠니’ 하시는데 그때 뭔가에 엄청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여태까지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나한테 안 맞는 일이네,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았을 뿐이야’라고 위안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힘들고 귀찮아서 포기했던 거죠. 그걸 무한 반복했어요. 그제야 이번에는 좀 다르게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보니 새롭게 공동체를 보게 됐어요. 다른 마음으로 보니까 맨날 똑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자체가 재밌더라고요.”
마을에서 마음을 나누는 일
- 마을 생활은 이제 좀 적응이 되었나요?
“그럼요. 마을에서 지내다 보면 제 존재의 무게를 여실히 느껴요.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 작은 일에도 좋아해 주시고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더 잘해야겠다 다짐하게 돼요. 이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도시에서 할머니들이 저한테 말을 걸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어요. 소소하게 할머니들 손 붙잡고 매니큐어 발라 드리거나 마을에서 영화제나 음악회 열어서 같이 즐겁게 지내는 일이 가장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바로바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일들이요.
또 도시에서는 주로 또래와만 어울리잖아요. 여기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듣고 배워요. 저는 중년 남성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쥬얼리 세공하는 곳에서 일했었는데 거기 아저씨들이 거칠었거든요. 그런데 사부님과 지내면서 세대가 달라도 말과 마음이 통하는구나, 추구하는 방향이나 가치가 맞으면 허물없는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신기했어요.”

아천리 장동범 이장님과 함께. 청그협 청년들은 특별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장동범 이장님을 ‘사부님’이라 부른다. 백아름 씨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다.
- 청그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동체’, ‘가치’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돼요.
“막상 일상에서는 그 말을 많이 쓰지 않아요. 외부에 저희를 소개하는 인터뷰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청그협의 공동체라고 하면 일단 함께 밥 먹고 일하는 식구들, 그리고 마을이지요. 더 나아가서는 청그협과 연결된 지역 안팎의 다른 단체나 사람들까지도요. 저희가 활동하는 범위에 따라 공동체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처음부터 뚜렷한 가치나 방향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도시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여기에 왔고,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좋은 사람, 좋은 환경을 고민해보자는데 동의했어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가치가 뭘까 지금까지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 모임을 해요. 같은 책을 읽고 특정 주제로 토론을 하면서 생각의 결을 맞춰나가고 있지요. 그전에는 나를 꾸미고 높이면서 남들처럼, 남들만큼 사는 데 치중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더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마을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 있을까 하는, 그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진심과 정성을 담아 꾸준하기가 목표다.
조금씩 꾸준하게 나아가기
- 그 변화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 같아요. 생각과 마음, 몸이 자라는 속도가 다르잖아요.
“맞아요. 저도 모르던 제 바닥을 계속 확인하게 돼요. 사실 도시에서는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거든요. 기분이 안 좋고 짜증이 일어도 어차피 잠깐 볼 사람들이니까 안 그런 척할 수 있고 저도 제가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거죠. (웃음) 그런데 여러 사람과 같이 생활하고 일하면서 부대끼다 보니까 저의 못난 모습, 모난 부분들을 자꾸 만나요. 그 과정이 아주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지금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먼저 경험해봤으니 다음엔 다르게 해볼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제가 원래 성미가 급한 편이라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있으면 바로바로 부딪히고 해결하려고 했었거든요. 지금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너도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럴 수 있어’ 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아직은 저의 역량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벌여놓은 일들을 쳐내기 바빠요. 늘 배울 게 많고 촉박하다고 느끼면서도 실제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 게으름이 부끄럽기도 해요. 또 제 욕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아요. 사부님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계속 조금씩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조금씩 꾸준히 성장해서 청그협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실력을 갖춘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잘 배울 수 있는 사람, 친구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올해 삼선재단 청년지역활동가 모임이 저에게 힘이 많이 됐어요. 지역은 다르지만,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구나’ 보면서 괜스레 든든하고 안심이 된달까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겠지요?“
공사로 어수선한 학교를 나와 백아름 씨가 혼자 마음을 가다듬을 때 찾는 ‘비밀의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강아지 식구들이 졸졸 따라와 끝까지 곁을 지켰다. 그는 종종 이곳에 앉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기 한계를 고백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까르르 밝게 웃는 그는 이미 바람을 품을 튼튼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 듯하다.

글 ︳신소희
사진 ︳이준표
*인터뷰는 청년&지역 커뮤니티 지원 10년을 맞아 2020년에 진행되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다음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 백아름 (2019년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지역활동가 / 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한 달에 두어 번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씨에게 문자가 온다. 때마다 시시콜콜 마을과 조합 일을 전하는 소식지부터 직접 농사지은 농작물, 지역 상품, 야심 차게 준비한 명절 선물세트 소개까지 참으로 부지런하게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발신한다. 화려한 수사로 꾸미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진심을 전하는 메시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고작 두어 번 만났을 뿐인 청년이그린협동조합과 백아름 씨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고 반갑기만 하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씨를 만났다.
-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하 ‘청그협’)은 ‘지역민과 청년이 협력하고 상생하여 즐겁고 행복한 농촌,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자’라는 큰 목표가 있어요. 청년들이 함께 농사도 짓고요, 지역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도 해요. 지역 어린이합창단 운영, 농업환경보전 활동 등 마을 일도 열심히 합니다. 요즈음에는 여기 폐교에 공방, 가공장, 카페, 공유사무실을 만드는 일이 한참이에요."
- 청그협에서 백아름 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청그협이 처음에 목표하던 방향, 추구하는 가치대로 가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을 조율하고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아요. 계속해서 구성원들과 회의도 하고 사부님(장동범 멘토)께 여쭤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둥지인 경북 상주시 이안면 아천리 폐교. 마을공방, 가공장, 카페, 공유사무실, 어린이놀이터, 게스트하우스 등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용기
- 청그협이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네요. 선뜻 대표를 맡을 때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초기에는 ‘나한테 맞는 일이 뭘까’ 많이 고민하고 찾았어요. 그걸 하지 못했을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지요. 더군다나 대표를 맡다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맡은 일,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원하던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오히려 일보다는 공동체 생활이 낯설고 불편했어요.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차려주는 밥 먹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도시 생활은 모든 게 편리하고요. 여기에서는 추우면 땔감 나무해야 하고, 뭐든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사람들이랑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도 불편하고요. 마을 어르신들이 다들 예뻐해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뭔가 부담스럽다고 느꼈었어요. 그냥 밥 한 끼 해 먹자 했는데 어느새 동네잔치가 되어 있고, 젊은 사람이 없으니 저희가 일을 다 해야 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사실 1년 차에 집에 돌아가려고 했었어요."
- 그 고비를 어떻게 넘으셨나요?
“한 번 마음이 접히니까 집에 가야 하는 이유가 백 가지 넘게 생기더라고요. 사부님께 말씀드렸더니 ‘조금 더 생각을 해봐라’, 또 ‘조금 더 생각을 해봐라’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1년이 지났어요. 그리고서도 제가 떠나겠다고 하니까 ‘정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야지’ 하셨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우스운 게 그렇게 결정하고 여기에 내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서운한 거예요. 그때 사부님이 저를 불러서 한 번 더 말씀하셨어요. ‘자기의 인생은 스스로 만드는 거다, 전처럼 하던 대로 똑같은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다르게 살아봐야지 않겠니’ 하시는데 그때 뭔가에 엄청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여태까지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나한테 안 맞는 일이네,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았을 뿐이야’라고 위안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힘들고 귀찮아서 포기했던 거죠. 그걸 무한 반복했어요. 그제야 이번에는 좀 다르게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보니 새롭게 공동체를 보게 됐어요. 다른 마음으로 보니까 맨날 똑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자체가 재밌더라고요.”
마을에서 마음을 나누는 일
- 마을 생활은 이제 좀 적응이 되었나요?
“그럼요. 마을에서 지내다 보면 제 존재의 무게를 여실히 느껴요.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 작은 일에도 좋아해 주시고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더 잘해야겠다 다짐하게 돼요. 이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도시에서 할머니들이 저한테 말을 걸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어요. 소소하게 할머니들 손 붙잡고 매니큐어 발라 드리거나 마을에서 영화제나 음악회 열어서 같이 즐겁게 지내는 일이 가장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바로바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일들이요.
또 도시에서는 주로 또래와만 어울리잖아요. 여기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듣고 배워요. 저는 중년 남성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쥬얼리 세공하는 곳에서 일했었는데 거기 아저씨들이 거칠었거든요. 그런데 사부님과 지내면서 세대가 달라도 말과 마음이 통하는구나, 추구하는 방향이나 가치가 맞으면 허물없는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신기했어요.”
아천리 장동범 이장님과 함께. 청그협 청년들은 특별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장동범 이장님을 ‘사부님’이라 부른다. 백아름 씨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다.
- 청그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동체’, ‘가치’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돼요.
“막상 일상에서는 그 말을 많이 쓰지 않아요. 외부에 저희를 소개하는 인터뷰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청그협의 공동체라고 하면 일단 함께 밥 먹고 일하는 식구들, 그리고 마을이지요. 더 나아가서는 청그협과 연결된 지역 안팎의 다른 단체나 사람들까지도요. 저희가 활동하는 범위에 따라 공동체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처음부터 뚜렷한 가치나 방향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도시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여기에 왔고,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좋은 사람, 좋은 환경을 고민해보자는데 동의했어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가치가 뭘까 지금까지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 모임을 해요. 같은 책을 읽고 특정 주제로 토론을 하면서 생각의 결을 맞춰나가고 있지요. 그전에는 나를 꾸미고 높이면서 남들처럼, 남들만큼 사는 데 치중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더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마을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 있을까 하는, 그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진심과 정성을 담아 꾸준하기가 목표다.
조금씩 꾸준하게 나아가기
- 그 변화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 같아요. 생각과 마음, 몸이 자라는 속도가 다르잖아요.
“맞아요. 저도 모르던 제 바닥을 계속 확인하게 돼요. 사실 도시에서는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거든요. 기분이 안 좋고 짜증이 일어도 어차피 잠깐 볼 사람들이니까 안 그런 척할 수 있고 저도 제가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거죠. (웃음) 그런데 여러 사람과 같이 생활하고 일하면서 부대끼다 보니까 저의 못난 모습, 모난 부분들을 자꾸 만나요. 그 과정이 아주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지금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먼저 경험해봤으니 다음엔 다르게 해볼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제가 원래 성미가 급한 편이라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있으면 바로바로 부딪히고 해결하려고 했었거든요. 지금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너도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럴 수 있어’ 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아직은 저의 역량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벌여놓은 일들을 쳐내기 바빠요. 늘 배울 게 많고 촉박하다고 느끼면서도 실제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 게으름이 부끄럽기도 해요. 또 제 욕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아요. 사부님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계속 조금씩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조금씩 꾸준히 성장해서 청그협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실력을 갖춘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잘 배울 수 있는 사람, 친구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올해 삼선재단 청년지역활동가 모임이 저에게 힘이 많이 됐어요. 지역은 다르지만,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구나’ 보면서 괜스레 든든하고 안심이 된달까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겠지요?“
공사로 어수선한 학교를 나와 백아름 씨가 혼자 마음을 가다듬을 때 찾는 ‘비밀의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강아지 식구들이 졸졸 따라와 끝까지 곁을 지켰다. 그는 종종 이곳에 앉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기 한계를 고백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까르르 밝게 웃는 그는 이미 바람을 품을 튼튼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 듯하다.
글 ︳신소희
사진 ︳이준표
*인터뷰는 청년&지역 커뮤니티 지원 10년을 맞아 2020년에 진행되었습니다.